웰컴박스 제작기

안녕하세요. 스포카에서 BX디자인을 담당하는 Huui입니다.
 
1)
최근 몇 년간 도도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적립을 통한 고객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국적으로 제휴매장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사업 초반 서울 지역 위주로 제휴가 이루어 졌다면, 이젠 서울 외 지역의 제휴매장 수도 못지 않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스포카에겐 제한된 인원과 시간으로 보다 많은 매장에 원격 설치를 해야한다는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이에 대한 다양한 해결방안 중 하나가 직접 설치가 가능하게끔 물품들을 상자에 담아 배송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쉽게 볼 수 있는 기성품 택배 상자를 구매해 사용했습니다.

사진1 : 예전 택배박스 사진
 
하지만 이 택배 상자로 도도 포인트와의 첫 인연을 맞는 사장님이 이 상자를 받았을 때 기분은 어떨까요? 업계 1위 브랜드라고 자부하더니 어째 영세해 보이고 전문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습니다. 조금 소홀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드셨을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전달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요. "매장과 고객을 세련되게 연결"하겠다는 사명은 이렇게 첫인상부터 실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배송 상자에 “웰컴박스”라는 가칭을 붙이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
상자 디자인을 하기 전에 주요하게 고려한 사항을 경중 없이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의 사항들을 관련 부서 직원분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웰컴박스 계획을 다음과 같이 세웠습니다.
 

 

사진2 : 웰컴박스에 담길 물품들

 

 
그리고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3)
초반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기쁨에 이런저런 거창한 계획들이 머릿속에 들어섭니다. 하지만 점차 타협해야만 하는 지점들이 생겼고, 저 또한 이만한 비용을 들일 가치가 있는 요소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습니다. 처음 제작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차차 개선을 해나가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상자 디자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상자의 초안은 이러했습니다. 상자 전체에 우리 브랜드 컬러인 파란색을 입히고,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응하는 BX 전략 중 하나이며 택배 운반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흠집을 어느정도 방지할 수 있는 매끈한 유광 코팅을 씌우려고 했습니다.

 
사진3_초안의 예시이미지

 
하지만 이 패키지가 배송 완료된 후에 이 박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배송 완료된 박스는 찌그러지거나 코팅에도 불구하고 흠집이 났을 것이고, 다른 용도로의 재활용은 기대하기 어렵기때문에 십중팔구 바로 버려질 것입니다. 저는 바로 버려질 상자에 너무 많은 요소를 넣어 예산을 늘리기보다, 최소한의 브랜드 요소만 적용하고 나머지 요소들에 투자를 하는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상자 소재는 가장 흔하게 쓰이는 크래프트 용지를 선택했고, 그 위에 흰색으로 요소들을 넣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브랜드를 강하게 심어주자는 의도로 로고는 큼지막하게 넣었습니다. 그리고 구성품을 잡아주는 틀이 필요 없게끔, 구성품 크기에 딱 들어맞는 상자 크기를 적용하므로 틀 제작 비용도 절감했습니다.



 
그렇게 아낀 비용은 웰컴레터와 상자 테이프를 제작하는데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초안에선 평범한 엽서형태였던 웰컴레터는 사장님이 편지를 읽은 후에도 버려지지 않고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업그레이드했습니다. 고급스럽고 도톰한 종이에 "WELCOME" 글씨가 도톰하게 올라오게 형압 후가공을 처리한 후, 접어서 세울 수 있게 칼선과 접선을 넣어서 매장 계산대 등에 둘 수 있게끔 제작했습니다.
 
또 좀 더 친근한 느낌을 주고자 자필로 담당자의 이름을 직접 기재할 수 있게 칸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투명한 상자 테이프에 로고를 패턴으로 넣어주어 도도 전용으로 제작했습니다.


 
4)
웰컴박스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면서, 그 과정이 일련의 옷 갖춰 입기와 아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앞서 디자인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택배 상자를 받은 사장님의 반응을 설명한 표현을 다시 살펴봅시다.
 
“영세”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 "소홀한 대접을 받는 기분” “(좋은) 첫인상 주기에 실패”
 
위의 표현들은 소개팅 자리에 상대가 트레이닝복에 패딩을 대충 입고 나타났을 때의 기분이라고 해도 얼추 맞아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꼭 화려하거나 눈에 띌 필요 없습니다. 반드시 비싼 돈을 들여 차려입을 필요도 없습니다. 본인의 개성이 드러나되 예의를 차린, 성의 있는 옷차림이어도 충분하죠. 그런 상대의 옷차림에서 오는 각종 정보(심지어 어떤 향수를 쓰는지까지)에서 우리는 은연중에 많은 것을 유추해냅니다. 옷차림 자체가 메시지가 된 것이지요. 이는 브랜드 디자인에도 적용이 됩니다. 고객들은 소개팅 상대를 “스캔”하듯 시각적인 요소에서 많은 정보와 메시지를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엔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이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전에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설명되고, “보조도구” 내지는 “(얼굴의) 화장” 같은 단어에 비유되는 일련의 흐름이 저는 달갑지 않습니다. 유독 디자인은 단독으로는 진정성 없는 활동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이 시각적 경험에서 호감을 느끼고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도, 반대로 불쾌감을 느끼고 뒤돌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냥 "보조도구"가 아니라 강력하고 효과적인 무기인 것입니다.
 
저의 포지션은 브랜드 경험 디자이너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시각적인 경험 제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Store Planner팀(매장관리/교육 팀)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프로젝트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진행에 도움을 많이 주고 힘을 실어준 팀도 Store Planner팀입니다. 고객 만족을 위해선 더 좋은 브랜드 디자인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는 전사적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예의 있게 잘 차려입은 모습으로 고객을 대할 수 있게 되었고 고객 만족도를 더 높일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글이 디자이너뿐 아니라 서비스를 운영하는 모든 분들이 브랜드 디자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